안녕하세요. 저메인입니다. 2022년 초에 읽은 '트렌드 코리아 2022'를 이 늦은 가을에 꺼내보는 이유는, 책의 내용이 2022년을 관통하고 있는 지금을 묘사하고 있는지 이야기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득템력'입니다. 값비싼 브랜드 제품이 아니라, 갖기 어려운 아이템을 누가 얻는가가 과시와 차별화의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경제적 지불 능력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희소한 상품을 얻을 수 있는 소비자의 능력을 ‘득템력’이라고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득템력'에서 발췌한 내용과 '저메인의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득템력이 부상하게 된 사회문화적 배경
"코로나 걱정보다는 원하는 모델을 못 살까 봐 걱정이에요."
서울 명동의 백화점에서 새벽부터 어느 명품 브랜드 시계를 사려고 기다리던 한 시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새벽부터 매장 앞에 장사진을 친 고객들 사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답니다. 말 그대로 코로나 걱정보다 명품 걱정이 앞섰던 것입니다. 바이러스의 창궐에도 불구하고 희소한 아이템이나 경험을 얻기 위한 소비 시장의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시'의 맥락과 전략이 달라지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게오르그 짐멜에 따르면 상류층의 유행은 그보다 신분이 낮은 계급의 유행과 구분되고, 낮은 신분의 계급이 상류층의 유행을 따라 하는 순간 소멸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유행은 계급적 차이의 수단이며 동시에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서로가 '차이 있음'을 인지하고, 차별을 생산하며, 이로써 권력관계를 유지하며 재생산합니다. 이 차이가 과거에는 계급이었고 이후 최근까지는 경제력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수준만을 척도로 오늘날의 변화된 소비행태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값이 비싸지 않아도 인기 있는 한정판 굿즈들 사이에 둔 득템 경쟁은 언제나 치열합니다. 득템의 세계에서 돈의 많고 적음은 핵심 요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주식·비트코인·부동산 등의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상대적으로 고액의 자산가들이 많아졌습니다. '영앤리치'라고도 불리는 이 젊은 부자들은 단순히 돈을 많이 쓰는 것에서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쉽게 살 수 없는 것을 구매하는 것에 가치를 둡니다. 지불 능력을 뛰어넘는 득템력을 자랑할 수 있어야 진정한 플렉스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만인 대 만인의 비교'가 이뤄지는 소셜미디어 세상에서 소위 '돈자랑'은 흔한 일이 돼버렸습니다.소비와 관련된 더 특별한 능력의 과시가 필요해진 것입니다.
득템의 과정을 즐기고 자랑한다.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워 득템의 대상이 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대부분 수량이 제한적이고, 한정된 수량은 경쟁 심리를 불러옵니다. 득템에 성공했다는 것은 곧 경쟁에서 이겼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얻지 못한 것을 나는 갖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오는 특별한 기분은 득템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립니다. 시간·운·노력·애정 등등 무엇이 됐든 득템력을 동원하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는 아이템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묘한 쾌감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득템 전쟁에서 어떻게 성공했는지 노하우를 공유하고 자신의 승리를 뿌듯해하는 글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승전보에는 '축하한다", "부럽다", "나는 오늘도 실패했다", "완전 전쟁이다’ 같은 댓글들이 줄줄이 달립니다.
득템은 또 하나의 투자 수단
명품 브랜드의 오픈런이나 스타벅스 굿즈 예약 전쟁의 이면에는 리셀 문화가 있습니다. 리셀이란 한정판 제품 등 인기 있는 상품을 구매한 뒤 비싸게 되파는 행위입니다. 리셀이 일종의 재테크 방법이 되면서 '리셀테크(리셀+재테크)'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웃돈이 제품 가격의 2배에 달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오픈런마다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많은 물건을 독점하는 전문 업자도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들을 걸러내기 위해 브랜드마다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재테크 수단으로써 인기는 여전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투자가 전국민의 관심사가 된 가운데, 한정판 운동화나 브랜드 굿즈는 Z세대에게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좋은 투자 상품으로 여겨집니다. 명품 가방처럼 고가의 상품은 구입하기 어렵지만, 굿즈나 운동화는 10~20만원의 여윳돈만 있으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운동화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구입을 원하는 마니아층이 탄탄하고, 한정판인 만큼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도 흔치 않습니다.
기업들의 한정판 전략
일단 기업의 입장에서 자사의 상품이 소비자들의 득템 대상에 오른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기회입니다. 이에 많은 브랜드들이 공급을 제한하는 한정판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연예인이 즐겨 마시는 소주로 유명해진 '키소주'는 증류주 브랜드 '화요'가 수출용으로 제작하는 제품인데, 1년에 약 3,000병만 생산합니다. 일부 특급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만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반소주의 30배가 넘는 가격에도 구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초프리미엄 시장이 아니어도 한정판 마케팅은 유효합니다. 스타벅스의 플레이모빌 굿즈 사례를 벤치마킹한 많은 브랜드들이 한정판 굿즈나 리미티드 콜라보 제품으로 헝거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물랑을 특별한 당신에게만 주겠다는 속삭임에 득템 경쟁의 무대는 갈수록 더욱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저메인의 생각-'과시욕'의 긍정적 해석
2년 전 겨울 어느 주말 오전, 제가 사는 동네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딘가를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유모차를 끌고 있는 부부, 청소년으로 보이는 소년들, 등산복을 입고 있는 어머니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줄을 서고 있는 곳은 나이키 매장 앞이었습니다. ‘요즘 한정판 구매를 사려고 텐트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더니, 여기였네. 이게 무슨 에너지 낭비인지, 한심하다.’ 그렇게 생각했던 저는 1년 전 겨울, 인터넷으로 나이키 한정판 신발을 구입하려고 온라인 응모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운 좋게 당첨이 되어 실제 가격보다 두 배로 비싼 가격으로 ‘리셀’에 성공해서 여기저기 자랑했던 기억이 납니다. 올해도 역시 편의점에 가서 혹시나 포켓몬 빵이 남아있나 확인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저는 결국 제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남들과의 차별성을 뽑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인가 봅니다. 소셜미디어 속에서 우리는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지만, 한편으로는 남들과 자신의 차이를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곤 합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과시욕은 욕망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단어로 표현되기만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인류의 발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인간의 특성인 것 같습니다. 아주 먼 옛날부터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 인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발명하는 과정들을 반복해 왔습니다. 돌로 사냥을 하던 인류는 철을 다루고, 가축을 기르며 농업을 시작하고,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인터넷을 발명하고, 이제는 가상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수많은 불편함을 해결하면서 점점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득템력’을 읽으면서, 물건이 아니라, 나는 어떤 행동과 방향으로 남들과의 차별성을 뽑낼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년을 관통하며 보는 '트렌드 코리아 2022'-6.엑스틴 (0) | 2022.09.19 |
---|---|
2022년을 관통하며 보는 '트렌드 코리아 2022'-5.헬시플레저 (0) | 2022.09.18 |
2022년을 관통하며 보는 '트렌드 코리아 2022'-4.러스틱 라이프 (0) | 2022.09.17 |
2022년을 관통하며 보는 '트렌드 코리아 2022'-2.머니러시 (0) | 2022.09.15 |
2022년을 관통하며 보는 '트렌드 코리아 2022'-1.나노사회 (0) | 2022.09.14 |